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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오빠/잡문창고

내가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 까닭 (1)

돈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 가지 생각을 해보자.
같다는 것과 다르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일까.
a = a' 라는 것과 a ≠ b 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a는 a'이고 a는 b가 아니다? 라고 하는 대답은 제대로 된 설명이라 할 수 없다.

철학은 상식에서 시작해서 상식으로 돌아온다.

예를 들어 사과와 오렌지를 생각해보자.
사과와 오렌지는 분명 다른 과일이다.
그런데 사과와 오렌지에 공통점이 하나도 없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그렇다고 사과와 오렌지를 같냐고 하면 그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니까 다르다는 것은 사실 전적으로 공통점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a 와 b는 다르다'는 말의 의미는 '그 둘에 공통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차이점이 있다'는 정도로 우선 설명할 수 있겠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a와 a'는 같다'는 말도 설명이 된 듯하다.
'a와 a'는 공통점만 있고 차이점은 없다'고 말하면 우선 적당하지 않을까. 
이것을 조금 세련되게 바꾸어보면, 'a와 a'가 같다는 것은 a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a'도 가지고 있고, a'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a 역시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 이로부터 '다르다'의 의미를 잡아낼 수 있겠다.
'a와 b가 다르다.'는 말은 결국 'a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 어떤 것을 b가 가지고 있지 못하고,
b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 어떤 것을 a가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다시 사과와 오렌지의 예로 돌아오자. 사과와 오렌지는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사과가 가지고 있는 붉은 껍질이나 작은 씨앗을 오렌지는 가지고 있지 못하고
오렌지가 가지고 있는 육즙가득한 알갱이와 흰 속껍질을 사과는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도 들 수 있는 '차이점'은 많지만,
이 때 중요한 것은 '공통점'이 얼마나 많건 '차이점'이 발견되는 순간 둘은 서로 다른 어떤 것이 된다는 것이다.

눈치빠른 사람들은 이미 눈치 채지 않았을까?
이 글을 읽기 전의 당신이 방금 이 글을 막 다 읽은 지금의 당신일 수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