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을오빠/잡문창고

『마음의 과학』,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 와이즈베리, 2012. (399쪽) 여섯 번째: 제프리 밀러, 「성선택과 마음」

『마음의 과학』,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 와이즈베리, 2012. (399쪽) 여섯 번째: 제프리 밀러, 「성선택과 마음」


저자 소개: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뉴멕시코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애』, 『스펜트』의 저자이다.


제프리 밀러는 다윈의 짝 고르기 성선택 이론이 동물에게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음을 보이려 한다. 그가 「성선택과 마음」에서 주장했던 것은 세 가지이다. 하나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성선택 이론이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과학계가 이러한 적용을 더 이상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과학이론을 제 멋대로 오용하는 이론가(ideologist)에 대한 힐난이다.


유전학과 진화심리학에 낯선 내 입장에서, 저자에게 가장 궁금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이것이다. 우리가 성선택을 통해 짝을 고르는 이유나 목적은 무엇인가. 자연선택의 거대한 목적은 생존과 번식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생존과 누구의 번식인가. 종 전체의 생존과 번식을 목적으로 개체들의 행동양식이 결정된다는 생각은 개인의 삶의 의미와 목적, 나아가 자율성을 지나치게 축소하는 것 같다. 이것이 ‘사실에 관한 질문’이 아닌 ‘당위에 의한 반대’로 오인될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다음 질문을 잇는 것이 좋을 듯하다. 만약 종 전체의 생존과 번식이 목적이라면 우리는 왜 개인인 자신보다 종 전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일까. 무엇보다 그것을 목적으로 결정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여기서 우리 인간이 원생동물들과 같이 생존이라는 일차적 목적밖에 없는 존재들이 아니라는 식의 반론을 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대목적은 진짜로 그것일 수 있다. 내가 궁금한 것은 만약 그렇다면 왜 그것이 대목적이냐는 것이다. 원시적인 생활양식에 기인한 많은 습성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남아있다는 것이 그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임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성선택에 있어 지능과 친절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 반드시 종 전체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일까? 여성들은 더 나은 자식을 잉태하기 위해 똑똑하고 친절한 남자를 원하는 것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간단한 설명 역시 우리에게 제공될 수 있다. 그런 남자는 그녀 자신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굳이 종까지 확대하지 않고 개체의 수준에서 설명할 수도 있다.

종의 생존과 번식에서 개체의 행복 추구로 내려오면, 우린 인간의 자율성, 의지, 선택 등에 더 넓은 영역을 허용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군집의 한 조각에서, 비록 때로 실수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 선택하는 한 개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