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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510/함께 읽고 함께 쓴 2018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언어였을까, 온도였을까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언어였을까, 온도였을까


《언어의 온도》는 교보문고 기준 2017년 베스트셀러 1위이다. 출판계에서 교보문고가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할 때, 아마도 이 책이 작년 한 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2016년 8월에 출간된 이 책은 9월 종합 순위 72위로 시작하여 10월에는 종합 22위로 도약하더니 2017년 3월 종합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며 그 해를 집어삼켰다. 《언어의 온도》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를 추측해 보면 크게는 디자인과 분량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신박한 디자인. 단순하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은 멋스러운 느낌의 디자인이 이 책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쉽게 말해 가지고 다닐 만한 책으로 보인다. 거기에 제목마저 괜찮다. ‘언어의 온도’라니. 가령 ‘생각하며 말하자’거나 ‘따뜻한 말하기’ 뭐 이런 식이었다면, 사람들이 구매는커녕 거들떠 보지조자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벼운 분량. 쪽수는 300쪽이 넘지만 판형 자체가 작고 에세이답게 행간도 자간도 넓디넓다. 조금만 집중하면 하루나 이틀 안에 독파할 수 있을 정도이다.


다른 요인을 꼽자면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것이다. 이중적인 의미이다. 베스트셀러라서 (우리처럼) 산다는 뜻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살만큼 공감할 수 있는 대중적인 감성을 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자는 순환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런데도 언급하는 까닭은 베스트셀러를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궁금했다. ‘왜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지? 왜 사람들은 이런 책을 사서 보는 거지?’ 그러나 되짚어 보면 답은 그 안에 있었다. 베스트셀러를 사는 것은 일종의 ‘최신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행위’라 볼 수 있다. 음악 어플리케이션, 멜론이나 지니가 제공하는 차트에서 1위라는 곡을 한 번 들어보거나, 극장가 예매율 1위라는 영화를 고르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큰 의미부여가 없는 행위라는 것이다. 만 원 정도의 돈으로 영화를 한 편 보거나 유행하는 티셔츠나 패션 아이템을 하나 사는 것처럼, 대중문화 - 그것도 고급문화로 분류되기도 하는 책문화의 - 최신유행을 향유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리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한 때 서점가를 달궜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3~4년이 지나자 깨끗한 상태로 중고서점에 쏟아져 나온 것과 비슷하달까. 더구나 이 책은 작고 가볍고 편하니, 패스트푸드 먹듯 읽어 치울 수 있을 법도 하다. 


이제 후자를 생각해 보자. 《언어의 온도》는 많은 사람들이 살만큼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했을까. 그 안 담겨 있는 것은 ‘사랑’, ‘관계’, ‘성장’ 등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소재’를 조곤조곤한 ‘표현’으로 익숙하게 ‘전개’한 비슷비슷한 에피소드들이 가득 있다. 영화 <신과 함께>가 ‘어머니’ 소재로 한국인 정서 감별 리트머스지 역할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 책의 내용에 ‘익숙’하다면 당신은 한국인이 분명하다. 《언어의 온도》 속 감동스러운 일상 속 (다소 억지스러운) 교훈들에서, 디자인도 그렇지만 모두를 만족시키고 싶었던 저자의 마음이 그대로 보인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려면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다. 누구나 아는 내용이라면 내게만 소중한 내용이 될 수 없다. 


애석하게도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내용을 곱씹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곱씹을 필요가 전혀 없다. 이 책은 비회귀적이고 비정적이다. 뒤로 돌아갈 필요도 없고 멈출 필요도 없이 그냥 쭉쭉 읽어나가도 무슨 말인지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독자로 하여금 잠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그런 책이라기보다 슥슥 읽어나갈 수 있는, 좋게 말하면 첫 머리에서 이미 주려는 교훈이 쉽게 떠오르는 책이다. 그래서 의미 있는 사색을 원한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단, 자기의 사색을 공감받고 싶다면 이 책은 분명 좋은 맞장구를 쳐줄 것이다.


우리가 가졌던 최초의 불만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사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유명 설렁탕 체인점에서 도가니탕이 진짜배기가 아니라고 불평하는 꼴인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별 의미 없는 행위로 1위가 ‘유지’될 수 있으니 이 책이 1위라고 격분하거나 이 책의 소비자를 무시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렇다, 이 글은 《언어의 온도》에 대한 리뷰라기보다 《언어의 온도》를 읽은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이다.



(아래는 이 책의 감성을 아주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공감된다면 당장 사서 읽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