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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510/함께 읽고 함께 쓴 2018

말이 칼이 될 때


혐오표현과 관련된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책이 있다. 법학자 홍성수의 《말이 칼이 될 때》(어크로스, 2018)다. 표현의 자유를 연구한 저자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정책 제안 보고서〉의 “차별에 근거한 ‘혐오적 표현’에 대한 규제” 부분을 집필하면서 혐오표현의 해악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진보의 상징이던 표현의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칼’처럼 그를 해치는 도구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 뒤로 저자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이 책은 그 결과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법학의 관점으로 혐오표현을 다룬 대중서답게, 혐오표현이란 무엇인지, 혐오표현이 왜 해로운지, 혐오표현을 규제할 법적·제도적 방법은 있는지 친절하고 꼼꼼하게 설명한다. 



혐오표현이란 무엇인가


‘혐오표현’이라는 말이 생소한 우리 사회에서는 “여자를 좋아하는데 왜 여성혐오죠?”와 같은 황당한 발언이 쏟아진다. 이러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이 책의 첫머리는 혐오표현을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혐오표현이란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모욕·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이다. 즉, 단순히 감정적으로 싫어하는 일상적 의미의 ‘혐오’가 아니라, 소수자를 차별하는 태도로서의 ‘혐오’를 ‘표현’하여 차별을 강화하는 효과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다수자에 대한 혐오표현’도 가능할까? 저자는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다수자에게는 소수자와 달리, 성·인종·민족·성적 지향·장애 등의 속성을 이유로 차별받아온 ‘과거’와 차별받고 있는 ‘현재’와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는 ‘미래’라는 ‘차별의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다수자에게 아무리 증오의 말을 뱉어도 차별받아온 역사적 맥락이 없기에 차별을 재생산하는 효과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혐오표현은 왜 해로운가


혐오표현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실제로 해악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혐오표현의 해악이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혐오표현에 노출된 소수자 개인 또는 집단이 ‘정신적 고통’을 당한다. 혐오표현에 노출된 소수자들은 실제로 편견, 공포, 모욕감, 긴장, 자신감·자부심 상실, 자책 등으로 고통받고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상당수의 혐오표현이 소수자 집단 자체를 대상으로 하므로 혐오표현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소수자 집단 전체로 확장된다.


둘째로, 혐오표현은 누구나 평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공존의 조건’을 파괴한다. 혐오표현이 난무한 사회에서 소수자들이 다수자와 평등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이 사회에서는 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일 혐오표현으로 소수자가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존립할 수 없게 된다면, 이것은 평등과 인간 존엄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셋째로, 혐오표현은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자들은 혐오표현을 ‘혐오의 피라미드’ 안의 한 축으로 설명한다. 편견, 혐오표현, 차별, 폭력은 동일한 맥락에 있기 때문에 편견과 혐오표현이 만연한 사회에서 차별과 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혐오표현을 규제할 법적·제도적 방법은 있는가


이렇게 해악이 분명하면 그냥 금지하고 처벌하면 되지 않을까? 이 책의 백미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에 있다. 혐오표현을 단순히 법으로 금지할 때 생기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더 나은 해결책은 무엇일지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 것이다. 혐오표현을 형사범화할 경우 남용 가능성과 표현의 자유를 고려하여 ‘증오선동’과 같은 가장 좁은 영역만을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 방안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유일한 해결 방안으로 삼는다면, 선동은 아니지만 실제로 심각한 혐오와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일 수 있다. 또한 혐오표현이 금지되면 모든 표현이 합법 표현과 불법 표현으로 나뉘어, 이전에 다양한 가치 판단에 의해 논의되던 것들이 ‘합법이냐 불법이냐’는 논점으로만 소급될 것이다. 법으로 규제할 수 없는 부분은 ‘합법인데 뭐가 문제냐?’고 무마하게 될지도 모른다. 전자는 이른바 ‘고소각을 재는’ 악질얌체들이, 후자는 ‘불법만 아니면 된다’는 법만능주의자들(?)이 활개를 칠 거라는 말이다.



따라서 저자는 ‘금지하는 규제’보다는 ‘지지하는 규제’, 즉 ‘형성적 규제’를 강조한다. 혐오표현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보다는 혐오표현을 사회에서 몰아내는 여건을 만드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형성적 규제에는 국가 차원에서 혐오표현과 관련된 인권교육, 인식제고 활동, 반차별 정책 시행, 소수자 지원, 차별문제연구와 같은 일을 하고, 시민사회에서 자율적으로 규제방안을 만들어가는 것이 포함된다. 저자는 이러한 형성적 규제를 더욱 체계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렇게 법과 제도를 통해 혐오표현을 규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늘 그렇듯이 모든 문제가 제도를 통해 말끔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 외에도 ‘정치의 역할’과 ‘대항표현’의 힘을 강조한다. 정치와 대항표현을 통해 차별과 배제를 꾀하는 이들을 사회에서 고립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법으로 규제되지 않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차별받는 소수자들과 연대하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한편 혐오표현을 사회 바깥으로 몰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정치인과 사회지도자,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할 때 비로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