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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오빠/글쓰기 책에 대한 글쓰기

글쓰기 책에 대한 글쓰기 (2) 사와다 아키오 선생의 『논문과 리포트 잘 쓰는 법』

(사진출처: yes24)

 

1.

사와다 아키오 선생은 1928년 미국 워싱턴에서 태어난 재미일본인이다. 전공은 서양사학, 학사는 일본 동경대학, 석사는 미국 코넬대학, 박사는 독일 본대학이다. 이 책의 초판이 1977년 인쇄되었으니, 한국나이로 딱 50이 되었을 때이다. (우리나라 번역 초판은 2005년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논문을 쓰지 못하고, 연구 방법도 모르는 학생이 많아지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다. … 나 자신도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의 코넬대학교 대학원에 다니면서부터 비로소 논문 작성법, 연구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아니 미국의 대학원은 그런 것을 당연히 알고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누가 가르쳐줘서 배운 것이 아니라 곁눈질로 배웠다

 

본인이 몰라서 했던 고생을 후학들은 하지 말라는 뜻이었겠지. 그래서인지 이 책은 저자 본인이 의도한 바대로 이론적이라기보다 실제적이다. 모두 12 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에는 그래서 단지 문장을 잘 쓰는 기예가 아닌 글을 잘 구성하는 기술들이 망라되어 있다. 자료 정리부터 문장쓰기, 개념분석, 나아가 분석적, 종합적, 비판적 읽기 까지 다루고 있다.

 

2.

나는 이 책을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때 샀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어 막연히 관련 책을 모으던 때와 겹친다. 저자가 서론에서 말했던 것처럼 '누가 가르쳐줘서 배운 것이 아니라 곁눈질로 배웠던' 글쓰기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싶어하던 때였다. 제목과 서문을 읽고 샀지만, 이번에 포스팅을 위해 다시 펼쳐본 책에는 단 두 페이지에 표시가 붙어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여러 군데 줄을 쳤다. 읽는 목적이 달라졌기 때문이겠지.

내게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늘 말하지만, 책은 나를 위해 내가 산 것이니 책이 주려는 것을 꼭 하나도 빼 놓지 않고 다 받으려 할 필요가 없다. 뷔페 가서 거기 있는 모든 음식을 다 먹진 않듯, 책도 그 안에 차려진 내용들을 꼭 다 읽을 필요는 없다. 필요한 부분만 읽으면 되는 것이다. 다 안 읽었는데 어떻게 아느냐고? 그래서 사전 지식이니 배경 지식이니 하는 것들이 필요하겠지. 이 포스팅 역시 마찬가지.

 

3.

사와다 선생은 이 책을 12개 장으로 구성해서 문제의식으로부터 주제 이끌어내는 법,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분석하는 법, 문장과 문단을 쓰는 법, 글을 분석적, 종합적, 비판적으로 읽는 법, 레토릭의 기본이론까지 넣어 두었다. 세부 내용에는 참고자료를 찾는 법, 참고문헌 카드와 연구카드 만드는 법, 노트하는 법, 자료를 판단하는 방법, 참고문헌을 정리하고 주석 다는 법 등 실제적인 테크닉들을 꼼꼼히 담아뒀다. 말 그대로 '논문과 리포트를 잘 쓰는 방법'에 대한 실용서이다.

다만 한계도 명확하다. 저자는 1928년 생이고, 이 책은 1977년에 나왔다. 그러다보니 지금으로보면 구식의 방법들도 태반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 책을 폄하한다면, 그 안에 담긴 충실한 기본기를 간과하는 일에 틀림없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부터 중요한 글쓰기 태도까지, 논문과 리포트를 쓰기 시작할 대학 초년생은 물론 그것을 가르치기도 하는 나와 같은 이들도, 이 책에는 배울 점이 많다.

 

4.

역자인 이명실 선생은 교육학 박사를 받은 분이다. 역자 역시 '학위논문을 쓰면서 경험했던 시행착오를 후학들은 덜 겪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역자가 붙여둔 부록 중 특히 "의미와 형태를 바꾸는 표현"과 "알아두면 유용한 자료 정보원"에는 이러한 역자의 번역의도가 충실히 담겼다 할 수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 대한 이 짤막한 리뷰 역시 혹시나 논문과 리포트를 쓰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우연히라도 이 포스팅을 보고, 나와 같은, 역자와 같은, 저자와 같은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덜 겪길 바라는 그 마음에서 쓴다. 

 

덧.

저자 사와다 선생은 미국과 일본의 글쓰기를 비교하면서, 일본은 기-승-전-결 의 문학적 문장과 문어발식 논지 전개가 특징이며 이런 점이 논문 (아마도 서양 기준의) 의 집중도를 떨어뜨린다고 평가했다. 나는 그의 이런 평가가 한국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지 않나 싶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평소 가지고 있던 개인적인 생각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한국 논문에서, 특히 인문학 분야 논문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표현이 있다. '나는'이라는 주어이다. 사실 우리나라 언어습관에서 문어체든 구어체든 주어생략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내가 영어권(혹은 독어 혹은 불어)에 살아보지 않아서 확답할 수 없는데, 적어도 내가 읽어 온 영어로 된 텍스트의 문장에서 주어가 생략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니 분명해진다, 이 내용이 '내 생각'인지, '모두의 의견'인지, 혹은 누가 뭐라든 상관없는 '사실'인 것인지.

A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쓴 '아이폰이 좋다'는 문장을 보자. 그리고 그 아래 댓글로 달린 B의 '안드로이드가 낫다'는 문장을 보자. 아, 아마 여기서 이 둘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다면 나는 그 탓이 다른 것이 아닌 '생략된 주어' 에 있다고 생각한다. A와 B가 '사실로서 아이폰이 좋다'거나 '모두가 안드로이드를 낫다고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해물라면을 선호하든 소고기라면을 선호하든, 우리는 그것이 개인의 기호일 뿐임을, 그래서 서로 싸울 필요라고는 전혀 없는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아이폰을 좋아하든 아이폰 할애비를 좋아하든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는 한 뭐가 그리 큰 문제일까.

문제는 생략된 주어이다, 그들이 다만 자신들의 선호를 조심스럽게 말한 것뿐이라면 말이다. '나는 아이폰이 좋다'는 글에 달린 '나는 안드로이드가 낫던데'하는 댓글의 저자들은 생각할 것이다. '아 그런가보네, 나는 이런데 쟤는 그런가보네.' 하지만 이것이 모두가 그렇다는 것으로 일반화되거나, 세상에 대한 사실로서의 진술로 받아들여지면 싸움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모두에는 너 뿐 아니라 나도 포함되어 있으며, 세상에 대한 사실은 하나 뿐이지만 '내 생각'은 다르기 때문에.

 

논문은 달라야 한다. 사실과 주장은 구별되어야 하며, 논문의 핵심은 주장에 있다. 우리는 문장을 조금 더 엄밀히 쓸 필요가 있다. 그 시작점 중 하나는 주어를 분명히 하는 것이지 않을까. 나를 드러내는데 그렇게 인색하면서 어떻게 논문을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까. 어떻게 '독창'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다음글: 3. 『고종석의 문장1』, 고종석 지음, 알마, 2014, 431쪽.

 

<글쓰기 책에 대한 글쓰기> 시리즈

 

1. 글쓰기 책에 대한 글쓰기 연재를 시작하며 (전체목록포함)
글쓰기 팁으로 글을 쓰려다, 글쓰기 책이 충분히 많은 까닭에 쓰는 글쓰기 책에 대한 글쓰기 (1)

 

2. 『논문과 리포트 잘 쓰는 법 -구상에서 완성까지』, 사와다 아키오 지음, 이명실 옮김, 들린아침, 2007, 290쪽.
글쓰기 책에 대한 글쓰기 (2) 사와다 아키오 선생의 『논문과 리포트 잘 쓰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