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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오빠/잡문창고

김충렬 선생님께 드리는 사죄와 감탄, 『동양철학의 본체론과 인성론』에 실린 「동양 인성론의 서설」에 대한 감상

윤사순 선생님과 김충렬 선생님은 고려대학교 철학과에서 교편을 잡고 동양철학을 가르치셨던 분들이다. ‘님’이라는 존칭을 붙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차이가 나지만, 나는 사실 김충렬 선생님의 책을 그리 자주 보지 않았다. (이하 문맥상 ‘님’은 생략한다.) 윤사순 선생은 한국 유학에, 김충렬 선생은 노장철학에 학재(學才)를 기울이셨고, 노장철학에 대해 나는 그 재미만큼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터였다. 더구나 내 책장에는 김충렬 선생의 노장철학 강의가 정리된 책이 있는데, 중국철학사의 느낌이 강해 진력하여 읽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에게 김충렬 선생은 한국 동양철학계의 어른 중 한 분으로만 계실 뿐이었다.


나는 쭈욱, 옳음에 매달렸던 것 같다. 처음에는 ‘옳음이란 대체 무엇인가.’의 문제에 매달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었고, 동양철학에서도 그런 개념 규정 쪽에 특히 관심을 가졌었다. 하지만 우리는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데 안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져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내 문제는 ‘옳은 행위는 어떻게 가능한가.’로 넘어가게 되었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는 좀 더 실천적 도덕이론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15년째이고, 박사논문의 주제는 도덕행위를 가능케 하는 동력의 차이와 그에 기인한 실천적 방법론의 모형으로 가닥이 잡혀갔다. 소재는 애증의 두 철학자, 맹자와 순자이다.


논문을 진행하면서 우연히 이후덕 선생이 쓴 「인성론과 심성론」을 읽게 되었는데, 그 안에 재미있는 내용이 있었고, 그 출처는 『동양철학의 본체론과 인성론』이라는 책에 실린 김충렬 선생의 「동양 인성론의 서설」이었다. 『동양철학의 본체론과 인성론』은 1982년 연세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되었는데, 정말 동양철학의 본체론과 인성론을 망라하려고 했는지 필진이 대단했다. 『동양철학의 본체론과 인성론』은 “제 1부 동양철학의 본체론”과 “제 2부 동양철학의 인성론”으로 나뉘어있고, 1부의 서론은 배종호 선생이, 2부의 서론은 김충렬 선생이 쓰셨다. 배종호, 김충렬, 정인재, 윤사순, 이강수를 비롯해 12명의 필진이 쓴 17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미 절판되었고, 찾을 수 없다. (나는 마침 우리 대학 도서관에 있었기에 운 좋게 볼 수 있었다.)

김충렬 선생은 두 편, 곧 1부 본체론 파트에 실린 「송대 태극론의 제문제」와 2부 인성론 파트를 여는 「동양 인성론의 서설」을 썼다. 나는 이 중 두 번째 것을 우선 읽었다. 「동양 인성론의 서설」은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에서는 중국철학이 왜 인성문제에 골몰하게 되었는지를 희랍철학과의 비교를 통해 설명한다. 2에서는 중국철학사상 인성론의 시작이 실은 은주교체기(殷周交替期, B.C.1200 전후)로까지 소급되며 당시에는 고자(告子)의 성무선무불선설(性無善無不善說)과 생지위성(生之謂性)의 설명이 대세였음을 설명한다. 1982년이면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이다. 2000년대에 들어선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동양철학의 인성론에 대한 논문은 맹자와 주자, 퇴계와 율곡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며, 고자와 순자, 양웅 등의 설은 ‘해명’ 혹은 ‘구명’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이는 맹자의 성선설과 그에 대한 성즉리의 설명이 아직 대세인 학계의 현실이라 할 수 있다. 1980년대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김충렬 선생은 “일반적으로 맹자의 성선을 유가의 정통으로 보지만, 인성론사에서는 그야말로 반전통자였던 것”이라고 썼다. 3은 공맹순(孔孟荀)의, 4는 한대(漢代)로부터 청대(靑代)에 이르는 동안의 인성론을 개괄했다.

김충렬 선생은 특히 인간의 도덕적으로 약동하는 힘, 발랄한 활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듯하다. 전반적으로 능동적이고 활발한 인성론에 좋은 평가를 내리는데, 이런 입장에서 그에게 가장 강하게 비판받은 것은 정이와 주희였다. 김충렬 선생은 ‘이고(李翶)의 성선정악(性善情惡)으로부터 중국인에게서 생동한 정감(情感)면이 침체되기 시작’했다고 쓴 뒤, 정이와 주희가 장횡거의 ‘기질지성도 잘 수양하면 천지지성을 존유할 수 있다’는 말을 ‘오해’하여 ‘리(理)만 추존하고 기(氣)를 억누르는 과오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이천이 “이고와 같이 성을 귀히 여기고 정을 천히 여기는 편집을 일삼아 동적인 정욕면을 봉쇄함으로써 정좌(靜坐)를 일삼는 선숙에 빠지는 폐단을 일으켰다.”고 비판하고, 또 주희 역시 “결국은 천리만을 택하고 인욕을 버려야 하는, 즉 생명의 행동적인 세계를 외면하는 정적 수양론을 내세웠다.”고 비판했다. 이는 은근히 모종삼의 견해와 비근한 듯하다.


나는 순자로 석사를 썼고, 박사는 맹자와 순자의 도덕철학이 가지는 차이의 구조적 원인 분석을 중심으로 준비하고 있다. 순자에 끌렸던 이유에 대해 나는 종종 ‘내 자신의 넘치는 욕망과 빈약한 절제력을 잘 알아서’라고 대답해왔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진심이었다. 나는 늘 내 안에서 약동하는 욕망뿐 아니라 이따금씩 끓어오르는 순진한 악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것의 그러함을 느끼는 만큼 나는 민감하게 고민했다. 얼마 전 같이 공부하는 와중에 언급한 것과 같이, 나에게 도덕철학은 정말 말 그대로 실존적인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맹자의 성선설이란, 이론적으로도 내 진정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었다. (물론 이것이 순자의 도덕이론이 더 훌륭하다는 뜻은 아니다. 맹자의 성선설이 가지는 강력한 장점에 대해서는 나도 늘 강변하고 있다.)

공부를 해옴에 따라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더 조밀해져 갔지만 여전히 나는 도덕철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성선설을 추존하는 입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전적으로 찬동하지 못하고 있다. 맥이 뛰듯 도덕의지가 퐁퐁 솟길 바라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원래 그렇다’는 입장이 아닐 뿐. 나는 게으르고 간악하며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다. 이 외에도 많은 나의 악덕들에 늘 주의한다. 나는 나를 못 믿어서 규범을 찾는다. 규범을 찾는 나의 이 태도가 나의 선한 본성의 증거라는 귀걸이코걸이 멘트에는 질린지 오래다.

김충렬 선생의 과감한 문장들에 카타르시스를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단지 나와 비슷한 입장이라서, 마치 문헌 속에서 내 주장의 근거를 찾은 것과 같은 기쁨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나와 다른 입장에서는 내가 느낀 만큼 혹은 그보다 큰 불유쾌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잘못된 깃발 아래 모인 편협한 동지애일까, 진가를 알아본 사람들이 공유하는 은밀한 공감일까, 그것도 아니면 타인의 명성에 기대 자신을 달래는 유치한 우쭐함일까. 무엇이든 간에 본인은 보지 못할 이 글을 통해, 나는 김충렬 선생님께 사죄와 감탄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