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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오빠/잡문창고

2015.05.25. (수) 강의에 대한 고민

2015.05.25. (수) 강의에 대한 고민


맨날 돈 없어서 골골거리는 것도 연구자의 일상 중 하나다. 사실 동년배들 취직할 때, 나는 학비를 써가며 공부를 하니 돈 벌 궁리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대학원 수업이나 세미나다 이래저래 일정들을 맞추다보면, 정규직은커녕 매일 출근하는 비정규직을 갖기도 요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행히 이래저래 운이 좋아서 비틀비틀대며 먹고 살고 있다. 이게 다 주변에서 희생해준 덕이란 걸 안다.

맨날 돈 없어서 골골거리는 꼴에 친한 동생들이 도서관 등에서 하는 평생학습관의 강의를 알아봐 준 것이 작년 여름이다. 강의계획서와 이력서를 마련해서 얼른 지원한 근처 구립 도서관에서는, 감사하게도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짜리 강의를 주었다. 작년 가을에 이어 이번 봄 학기에도 같은 곳에서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도서관과 수강생 선생님들이 잘 봐주신 덕이다.

작년에는 책 몇 권을 골라 <서구 지성사 훑어보기>라는 주제로 16주 강의를 했다. 이번에는 좀 더 깊이 가볼까 하고 <논어>를 골라 12주를 진행하기로 했다. 강독(講讀)은 너무 늦고, 강의(講義)는 어려울 것 같아서 선독(選讀)으로 정했다. 띄엄띄엄 읽어나가면서 매주 1편씩, 내가 설명을 좀 붙이고 질의와 토론으로 진행하려 했다. 작년에 약 열대여섯 분 들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스물네 분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11주차인 오늘 출석은 6명이다.

사실 6명으로 축소·고정된 것이 벌써 몇 주째이다. 내가 오기 전에도 쭉 수강해오시던 분들이라고 하던데, 내 탓에 수가 급격히 줄었다. 남은 분들께선 계속 재밌다, 유익하다고 해주시지만, 어쨌든 많은 분들의 걸음을 끊게 만들었다.

남은 수강생 선생님들께서는 불참한 지인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논어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나보다’, ‘바빠졌나보다’, ‘(시작한지) 한 참 돼서’ 등으로 변명을 해주신다. 하지만 <논어>는 여전히 인기 있는 텍스트이고, 불참하셨던 분들도 저번에는 열심히 나오셨던 분들이다. 평생학습관에서 동양고전을, 그것도 대학원생들과 학부생들 중간 정도로 선독하려 한 것이 문제든, <논어>라는 재밌는 텍스트를 지루하게 만든 것이든, 이 강의보다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해졌든, 결국 문제는 나다.

강의가 어려운 건 어디에 맞춰야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수강생과 긴밀하게 커뮤니케이션이 되면 좋지만, 사실 그것도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긴밀하게 커뮤니케이션 한다 한들 수명에서 수십명에 이르는 수강생들의 모든 바람을 다 맞춰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평생학습을 들으러 오는 수강생들이 원하는 건 자기들이 각자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한 전문가의 소견일지도 모른다고. 확실히 대학생들과는 다르다. 전공이든 교양이든 대학생들에게는 ‘가르쳐줘야 할 것’이 분명하게 있다. 하지만 평생학습을 들으러 오시는 분들도 그럴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