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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오빠/잡문창고

여성혐오주의자의 여성혐오범죄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현실화라고 보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여성혐오주의자의 여성혐오범죄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현실화라고 보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 시작하기에 앞서 다음 두 가지를 먼저 짚어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1. 강남역 살인자를 옹호할 생각도, 추모시위를 하는 사람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2. 언제나 그렇듯 지적·비판은 환영한다. 다만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는 비난은.. 하아 어쩌지.. ㅋ


이 글은 함께 공부하고 함께 블로그를 운영하는 동료 ‘이응부자’의 글, “간밤에 든 잡생각(http://lab510.tistory.com/52)”을 흥미롭게 읽다가 댓글로 다 하지 못할 것 같아 시작한 글이다.
(논지 이해를 위해서 원문을 읽고 보시는 것도 추천한다.)


1. 우선 ‘가부장주의’와 ‘남성우월주의’가 ‘여성혐오’와 ‘여성혐오범죄’의 배경이라는 것에 대해.
예를 들어보자. 흑인이 차별받던 1900년대 중반의 미국을 생각해보자. 흑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사회에 만연했고, 이는 백인우월주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차별과 멸시가 ‘혐오’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 백인우월주의에 한껏 빠진 어떤 백인 ‘백(Back, 39세, 무직)’씨가 선량한 흑인 ‘블랙(Black, 28세, 종업원)’씨를 길에서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치자. 살해동기를 묻자 백씨는 “흑인이니 죽여도 되지 않냐? 무슨 문제냐?”라고 대답했다고 치자. 이것은 ‘차별과 멸시’인가 ‘혐오’인가. 아마 ‘혐오’로 보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대답했다면 어떨까. “나는 흑인이 싫다. 흑인들이 이 땅을 더럽히고 싶다. 흑인들을 다 죽여 버리고 싶다.” 이렇다면 말 그대로 빼박캔트 ‘혐오범죄’이다. (강남역 살인자가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더라.) 두 살해 동기는 분명 다르다. 전자의 배경에 백인우월주의가 직접적으로 관여되어 있다면, 후자의 경우는 흑인혐오가 관여되어 있다. 물론 흑인혐오에는 백인우월주의가 한 요인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백인우월주의가 흑인혐오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개미나 지렁이를 밟아죽이고도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개미나 지렁이를 멸시하는 걸까, 혐오하는 걸까? 강남역 살인자가 가부장주의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남성우월주의의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가부장주의나 남성우월주의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부장주의=여성혐오? 남성우월주의=여성혐오? 둘은 분명 다르다. 우리가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을 혐오하지는 않지 않은가.

2. 강남역 무차별살인이 여성혐오범죄라는 것과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현실화라는 것에 대해
강남역 살인자는 살해동기를 여성혐오로 밝혔다. 강남역 살인이 (그 살인자의) 여성혐오로부터 기인한 사건이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것이 이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현실화인가 하는 점이다. (이 사회에 여성혐오가 만연해있는가의 문제는 따로 다루기로 하자.) 사회에 만연한 어떤 이데올로기의 현실화가 주체의 인지와 결단과 관련이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말하자면 사건의 당사자가 “나는 지금 이러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느냐의 문제이다. 인간존엄, 자유, 평등이라는 대단한 가치를 내세우지 않고도 경험되는 불평등과 불합리를 못견뎌하는 수많은 사례들은 인지가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 아이에게만 소시지를 주었을 때 단체로 항의하는 유치원생들의 사례보고는 흔하다. 이 유치원생들이 “이것은 공평하지 않아! 나는 자유와 평등을 수호하겠어!”라고 생각했을까? 본성이 그렇다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고? 설마.
그렇다면 강남역 살인자 역시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현실화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모든 행위가 곧장 이데올로기의 현실화로 이어질 순 없다. 자신의 행위가 특정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것이라는 자각이 없다 해도, 자신의 행위의 이유에는 그 아이디어가 드러나야 한다. 말하자면 그 행위에는 그 가치의 공유자들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내가 그 소시지를 먹고 싶었다면, 그것은 공평이라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이번 일에 대응시켜보자. 한 사람이 “여자는 전부 싫어!”라는 분명한 여성혐오로 지나가던 불특정 여성을 살해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여성혐오로부터 나온 것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개인적 여성혐오로 봐야 할까. 이 사회에 여성혐오가 만연하다고 쳐도, 이 사람이 그걸 대변했다던가, 현실화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주장 아닐까. 아 물론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가 만연하고, 그것이 드러난 사건으로 이 사건을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가 만연하다는 것부터 입증해줘야 한다. 그럼 이걸 마지막으로 검토해보자.

3. 이 사회에 여성혐오가 만연한가에 대해
앞서 가부장주의와 남성우월주의 등이 여성혐오와 유관할 수는 있어도 직결되지도, 같은 것이지도 않다는 것은 이미 확인했다. 그렇다면 여성혐오는 얼마나 만연한가. 이것을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회과학적 연구와 방법론이 필요하다. 이응부자의 글에서 확인한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많은 선행 연구가 있다. 그러나 선행연구 검토를 다 하면 좋겠지만, 여기서는 ‘여성 혐오’라는 개념을 분석하면서 우리 사회의 면모와 얼추 비교해보는 것으로도 내 생각을 드러내기엔 충분한 것 같다. 혐오는 미워하는 것이다. 사회에 특정 성별, 인종, 세대, 집단, 지역 등에 대한 혐오 정서가 일반화 되어 있는 경우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여러 곳, 여러 시대에 확인할 수 있다. 그럼 이제 그런 일반화된 혐오, 즉 만연한 혐오의 사례들과 작금의 상황을 비교한다면, 이 사회에 여성혐오의 만연도(?)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혐오는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다. 미워하고 싫어하는 대상에 대한 일반적인 대응은 무시하거나 피하거나 멸시하거나 비난하거나 공격하거나 격리하는 것 등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관계 맺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라고 온화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물론 혐오는 더욱 높은 수준의 공격적 태도/행동의 가능성도 포함한다.) 자 그럼 이 사회에 만연한 독신주의는 여성(남성) 혐오로부터 생긴 ‘관계 거부’일까? 글쎄, 사실 대부분의 이유는 취업, 결혼비용, 결혼 후 생활 등 사회경제적 요인이다. (이거 통계 어디서 봤는데 까묵. 일반적인 이야기라 생각하는데, 통계자료를 요청하시면 찾아보겠음.) 여자가 미워서 결혼 안 하는 남자가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다. 요즘 유행 중인 ‘모쏠’이라는 말이 있다. 이 모쏠들은 여성이 미워서 모쏠인걸까? 요쯤 되면 ‘그렇게 일반화 할 수 없다!’는 반박이 등장할 때인 듯하다. 내말이 그 말이다. 물론 우리는 혐오로 인한 무차별 범죄에 주의해야 한다. 치안에 더 신경 쓰고 주변을 더 돌아봐야 한다. 그런데 이게 이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증거이며 현실화이다? 이 사회에 여성혐오가 만연한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일반화는 자못 ‘성급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