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을오빠/잡문창고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장대익, 바다출판사, 2013. (263쪽)

장대익 교수는 최재천 교수와 함께 요즘 ‘핫’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진화론자의 입장에서, 과학철학자의 입장에서 세간의 일들에 대해 썼던 것들을 모아 낸 것으로 보이는 이 책에는 교육,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종교를 넘나드는 많은 ‘쪽글’들이 5가지 주제들 아래 모여 있다. 쪽글이라 짧고, 짧으니 간결하고, 간결하니 쉽고, 쉬우니 재미있다. 그가 다섯 가지 주제로 자신의 글을 모았으니, 나도 다섯 가지로 소감을 써본다.

 

 

1. 글이 짧다. 대략 1,800~2,000자 내외인 듯하다. 한 문단에 길어야 400자, 보통은 300자 정도가 되니, 6~7문단에 자신의 생각을 풀어야 한다.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은 조금 짧게,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용도로 써야하니 실제로는 4~5문단, 약 1,500자 안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 그러다보면 지지부진하게 중언부언할 수 없다. 어려운 용어를 쓰고 부연할 수도 없다. 글이 간결하다. 글이 간결하니 이해하기 쉽다. 이해하기 쉬우니 재미가 있다. 내가 얻은 첫 번째 소감이다.

 

2. 두 번째 소감은 그의 다섯 번째 글에서 얻었다. B5 인쇄본으로 4쪽 남짓한 그 글의 제목은 <소통 없는 연구는 맹목>이다. 그는 여기서 ‘오직 연구’를 외치는 연구자들을, 인정하면서도 비판한다. 칼 세이건과 리차드 파인만, 그 뒤를 이은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크레이그 벤터, 브라이언 그린 등 활발한 베스트셀러 과학자들을 소개한다. 물론 이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석학들이다. (내가 얼마 전 읽기 시작했던 『마음의 과학』의 저자들이 속해있는 ‘엣지 재단’에 대한 소개도 나온다.)

장대익이 연구에 매진할 수 없는 한국의 연구풍토와 연구에 매진하지 않는 한국의 연구자들에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하는 아쉬운 소리는 과학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과학 영재의 슬픈 풍경>, <훌륭한 과학자는 엉덩이가 뚱뚱하다>, <한국 이공계의 진짜 위기>, <과학의 본질은 논쟁이다>, <호기심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부재하는 아빠와 문화적 무성생식> 등 저자의 다른 글들에도 보이는 성과중심의 학문풍토와 이로 인한 오랜 연구의 부재에 대한 우려에 깊은 공감을 했다.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는, 종종 내 공부의 목적을 자문한다. 탄탄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쉬운 글, 재미있는 강의, 울림 있는 삶의 길을 가고 싶다.

 

3. 세 번째는 두 번째에 이어지는 것이다. 약 260쪽에 달하는 장대익 교수의 글을 읽는데, 나는 고작 이틀을 썼다. 지하철을 오가며 읽었으니 그리 많은 시간을 쓰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슥슥 넘어가는 책을 읽었다. (우리 팀의 고민 중 하나는 책 읽는 버릇에 대한 것이다. 대부분의 책과 우리는, 말 그대로 씨름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장대익 교수의 책과 유시민 작가의 책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쉽고 편하다. 마치 능숙한 화술을 가진 달변가가 아닌, 현지인의 든든하고 편안한 안내를 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들의 글이 쉽고 편한 데는 세 가지 까닭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확실한 전문성이 보였다. 둘째, 독자를 배려하는 태도가 있었다. 셋째, 이것들이 드러날 만큼 글을 잘 썼다. 전문적인 사람들의 글은, 때로 지나치게 전문적이다. 전문성이 없는 글은 가볍고 성기다. 가볍고 성긴 글은 읽기 편할지 몰라도 읽고 나서 개운하지 않고, 지나치게 전문적인 글은 읽힐 기회조차 놓치기 십상이다. 어느 수준이 적당한 걸까. 어디가 적당한 선일까. 이 적당한 선긋기는 많이 읽고 많이 쓸 때 비로소 보인단다. 일종의 노하우 같은 것이겠지. 잘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각’ 같은 걸까나. 내 소감으로 말하자면, 부럽네.

 

4. 『과학은 인간에게 무엇을 말하는가』에는 35개의 글이 실려 있다. 그 안에는 주제를 정하고 글들을 모아 넣으면서 그 글들을 갈무리하는 약간 긴 다섯 개의 글 역시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다섯 개의 글을 뺀 나머지 30여개의 쪽글들은 이 책을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이전에 썼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최근 과학자들은 데이터 마이닝을 통해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는데, 나도 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에세이들을 모으고 분류하여 그동안의 내 문제의식을 발견해 보려 했다. 그 결과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실로 멋진 말이다. ‘자신의 글들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찾는다.’ 뒤집어 말해보자. 자신이 이제까지 생각했던 것들을 속에서 자신이 궁금해 했던 것들을 찾는다.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답을 찾는 방식과 자신이 내놓은 답을 통해서 저 밑바닥에 있는 그 깊은 문제를 찾는 방식.

내 선생님들은 늘 질문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나 역시 늘 질문이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질문을 찾아내야 한다.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연구와 논문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나는 끊임없이 되뇌었고, 끊임없이 내 문제를 찾고자 노력해왔다. 내가 궁금한 것을 궁금해 하며 시간을 보내왔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끊임없이 그래왔다. 그런데 장대익 교수의 방식은 나와는 정 반대 방향이었다. 그는 수많은 마침표로부터 물음표로 이어갔다. 일단 쓰고, 다시 읽어보면서 그 문제의식들을 모으고 나눴다. 여기에 대한 나의 반응은? 쿨. 하나 배웠습니다, 교수님.

 

5. 마지막 소감을 말할 시간이다. 마지막이니 소감을 먼저 말하자면, 이거야 원, 고맙다. ‘고맙다’라는 단어를 쓰기 전에, 부럽다, 부끄럽다, 쉬지 말아야겠다, 열심히 해야겠다 뭐 등등 썼었다. 그렇지만 역시 내 마지막 소감은 ‘고맙다’이다. 연구건 소통이건 중요한 건 꾸준한 호기심과 열정이다, 그가 말했듯. 정말이지,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