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응부자/ㅇㅇ

[자유론] 서평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책세상(1995)



 

이 글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에 관한 필자의 편협한 요약이자 필자의 추후 공부를 위한 의문점을 나열한 것이다


《자유론》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보통의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그에 관해 논의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 그 생각이 설령 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를 끼치지 않는 한에서 그리고 그에 따르는 결과에 온전히 책임을 지는 한에서, 인간은 누구나 행동의 자유를 누려야만 한다. 여기서의 자유는 법적인 자유뿐만 아니라 대중의 여론으로부터의 자유를 포함해야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자유가 허용되는 경우에만,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개별성(individuality)’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 개별성의 발현이야 말로 인간의 궁극적 목표인 좋은 삶을 달성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밀의 주장 자체는 간명하지만, 그 주장은 객관화할 수 없는 추상적 개념이자 가치관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그것의 타당성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그것의 실제 현실에서의 작용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을 고려한다면 대단히 복잡한 논의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자유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설득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세밀한 노력에 더해 그것의 현실적 적용에 관한 생각을 면밀하게 진행한다.


자유가 가지는 가치는 측정하여 통계로 제시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이는 그것이 즉각적인 이로움을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가장 큰 이로움의 바탕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하다. 물론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밀이 주장한 자유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제한적 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타인의 행복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자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자유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격의 자유는 즉각적인, 직접적인 즐거움이나 이로움의 원인이 되기보다는 이면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의 즐거움이나 이로움의 근거가 될 공산이 크다. 그에 따라 이러한 자유를 주창해야 하는 이론가로서는 그 주장의 강한 확신을 부여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밀은 이러한 어려움에 속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대단히 수려하고 명쾌한 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주장한다. 그는 먼저 제2장에서 자유로운 생각과 발언의 자유를 깊게 탐구한다. 밀은 인간이 가진 불완전함을 직시하고서 그로 인한 틀릴 수 있음의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그 가능성을 언제나 인정한다면, 우리는 현재 통설로 받아들이는 어떠한 견해에 대해서도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밀의 아름다운논증에 따르면, 그 이견이 참이거나 반만 참이더라도 우리는 진리가 주는 이로움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설령 그것이 거짓일 경우에도, 그 거짓에 맞서는 참된 견해의 논증은 박제되어 주입된 상태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진리의 빛을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비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어서 밀은 사상의 자유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행동의 자유를 조심스럽게 주장한다. 그의 주장이 조심스럽다고 평가하는 것은 그가 자유로운 행동의 발현보다도 자유롭지 않아야할 행동을 경계하는데 자신의 글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밀이 주장하는 자유는 방종이 아닌 책임 있는 자유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행복에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도 인정하는 것처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기 자신에만 영향을 끼치는 행동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한 개인은 세계의 일원이자, 한 나라의 국민이자, 여러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이자, 한 가족의 성원으로서 수많은 관계의 겹들에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그에게만 직접적으로 관련된 행위일지라도, 타인에게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는 그의 더 나은 행동이 가져다줄 수 있는 정서적물질적 결과를 고려할 때 손해를 입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밀의 기본적인 생각은 자유로운 행위로 인해 본분을 망각하고 미래의 기대치를 달성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피해를 끼치는 경우에는 사회적 제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 자유로운 행위자가 타인에게 끼치는 간접적인 피해는 자유의 허용이 가져다주는 더 큰 이로움을 위해 감수해야할 부분이다. 따라서 자유로운 행위자가 가족들을 비롯한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이 갖는 실망감으로 인해 행위의 방해를 받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밀은 대단히 플라톤스럽게 이야기하길, 이미 그는 자신의 이상적인 능력의 실현에 못 미침으로 인해서 더 나은 행복을 얻을 수 없는 벌을 받고 있으며, 그 결과의 책임을 지고 있으므로 더 과한 벌은 필요하지 않다.


밀이 세밀한 탐구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소박한(naive) 생각을 논증의 부담 없이 자유롭게 떠들자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받아들이는 한에서, 한 개인의 행동이 가져올 직접적, 간접적 영향 관계의 구별은 분명 모호한 점이 많을 것 같다. 더구나 행동이 가지는 연쇄적 인과관계는 최초의 어떠한 피해도 발생시키지 않던 행위가 종국에는 큰 피해의 원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로 인해 비록 논리적 오류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의 우려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그럴 경우 최초의 원인이 되는 행동은 자유로운 행동으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파괴적 결과를 없애는 가장 깔끔한 방법은,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 속에서 한 개인이 궁극적인 자유를 추구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보다, 최초의 싹을 잘라 원천 봉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밀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인간 자신의 선택과 욕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강요받은 것이라면 가치가 없다고 믿지만, 자유로운 개인들이 이루어내는 자발적인 진보를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더 큰 대가를 요구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필자가 자유론에서 주목하게 된 것은 밀의 생각을 떠받들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전제에 관한 것이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인간은 본성상 좋은 삶을 지향하고 있다. 이때의 좋은 삶이란 자유로운 삶이자 제각기 가지고 있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사는 삶이다. 인간이 원래 그러하다면 그렇게 살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는 자신의 주장의 타당성과 당위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는 윤리학에서 대표적인 오류로 지적되는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를 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무언가를 목표로 삼는 다는 사실 판단으로부터 인간이 어떻게 해야 바람직하다는 가치 판단을 추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지향성에 대한 판단과 그것이 좋은 것이라는 판단 그리고 좋은 것은 해야 마땅하다는 판단 사이에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치부될 수 없는 훌륭한 사고의 과정이 적어도 필자에게는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세밀한 논증을 위해서는 '자연주의적 오류'에 대한 분석이 당연히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